짙은 안개와 빗방울, 무림리고개 지나 축석령까지 여정도로반사경에 비친 서로의 모습을 찍었다. 얼마나 올라가야 할까? 그래도 꽤 올라가야겠지? 생각하며 오르는데 금세 정상에 닿았다. 해발 380m의 노고산은 허무할 정도로 낮은 산이었다. 물론, 우천 속에서 감사할 따름이다. 마침 고모리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이 있어 사진을 부탁드렸다. 오늘만 벌써 네 번째 만나는 사람이다. 주말인데다 날이 많이 풀려서인지, 서울 근교라서인지 오늘은 등산객과 자주 마주친다. 부슬비 내리는 와중에도 정성껏 사진을 찍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오늘 산행에서 수연 언니와 함께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다. 노고산은 어떤 사람이 늙은 고모님을 모시고 산밑에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매장한 묘 앞에 마을이 생겨서 이 마을을 고모리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이 고모리 산성터 이기도 하고 산성터 설명에도 고모산이라고 되어 있다. 한북정맥을 지나는 길에 노고산이 하나 더 있으니 노고산이 아닌 고모산이라고 하면 명칭의 혼선이 적었을 것 같다. 이름 지은 사람 마음이겠지만 조금 아쉽다. 사진 찍어준 산객에게 감사를 전하고 계속해서 이정목의 이곡초등학교 방향으로 부지런히 걷는다.예상보다 빠르게 오른 것처럼 하산도 순식간이다. 비를 맞으며 걷는 길이라 정신이 없었는지 도로로 내려오기 직전에 또 한 번 길을 헤매었다. 그래도 길을 어찌어찌 찾아서 유황수목원요양원 입간판 앞으로 내려올 수 있었는데, 우리가 내려온 길의 300m 전에 더 확실한 길이 있다고 한다. 사진을 찾아보니 무덤가 옆이라 우리가 모르고 그냥 지나친듯하다. 가끔 길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직전까지도 표지기를 발견했던 터라 의심할 여지가 없었는데, 표지기가 제대로 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잘못 찾은 길에도 표지기가 있는 걸 보면서 위안으로 삼곤 한다. 오늘은 온종일 헤매는 것이 일상이다. 이 요양원이 있는 도로가 이곡고개다. 아마 이곡리에 있는 고개라 해서 이곡고개라 부르는 것 같다. 좀 더 정확한 길로 내려왔더라면 길을 찾기가 쉬웠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길을 또 헤매었다. 분명 방향으로는 요양원 뒷산으로 올라가는 게 맞는데 표지기나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차량 몇 대가 고개를 넘어가며 우리를 쳐다보고 지나간다. 한 대는 잠시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떠났다. 1000원짜리 일회용 우비를 입고 산행을 이어갔다. 노고산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했다. 안개가 자욱이 껴있는 날 부슬비까지 내리는 오후에 하얀 소복처럼 생긴 비옷을 입은 사람 두 명이 요양원 주위를 배회하고 있으니 이상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비는 오고 그 와중에 GPS는 눈치도 없이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튀고 있다. 길은 보이지 않고 당최 감이 잡히질 않아서 무작정 요양원 앞쪽에 개방된 길로 올라가 본다. 무덤 옆길로 올라서니 길이 연결되어 있다. “휴!” 다행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헤맨 이유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가 날머리에서 좀 더 내려가 도로로 빠져나왔고, 들머리가 보이지 않아 헤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 어긋난 길 덕분에 한참을 맴돌았다. 자주 길을 잃어도 또 금세 길을 찾아 다행이다.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언니가 우리가 기록한 GPS 트랙은 대충 봐도 그 모양이 이상해서 아무도 안 따라오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루트가 삐죽삐죽한 것이 누가 봐도 참 많이도 헤맨 모양새라 그럴 것 같긴 하다.이어지는 산은 온통 묘지로 둘러싸인 산이었다. 이름도 없는 동네 야산인데, 야트막한 능선 주위로 잘 꾸며진 묘지가 많았다. 이따금씩 쉬어가는 벤치도 놓여 있고, 걷기 좋은 길이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니 기분 좋은 산 내음이 공기 중에 퍼진다. 산책하기 참 좋은 길이다. 두 번째 쉼터에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한북정맥은 거친봉이 방향으로 직진이다. 이곡초등학교 방향으로 가면 앞서 이야기했던 광릉숲 둘레길 4코스 고모리산성길(비득재~고모리산성~이곡고개~이곡초교~무림리)을 따라 걷게 된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 공동묘지가 있고, 사잇길을 따라 걷는다. 이윽고 철책을 따라 숲길을 걷게 되는데, 이 철책만 따라가면 무림리 고개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테마가 정말 확실하구나! 야산, 철책, 무덤, 길 찾기. 이 단어들로만 오늘의 산행을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어쩜 철책이 이렇게 많을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급경사 내리막과 가파른 오르막을 두 번 정도 반복하면 철책과 방향을 달리하는데 이후 철망으로 된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면 무림리 고개에 내려선다.무림리 고개에서 포천 시내 방향으로 내려오면 길가에 농원밥집 간판이 보인다. 간판 바로 뒤가 정맥길이다. 한북정맥을 걷고 있고, 관심이 있으니 알 수 있는 길이지 그렇지 않으면 간판 뒤에 가려져 있어 길을 자주 지나는 주민이라도 이곳이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인지 알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말 그냥 지나치기 쉬운 길이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만한 길이라 한북정맥을 걷는 산객 외에는 이곳으로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짧은 오르막을 넘어서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면 주택단지 임도로 내려온다. 군부대 철책이 아니더라도 사유지를 많이 지나는 탓에 넘어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갖가지 철조망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잘 포장된 마을 임도로 내려와 전원주택단지를 지나서 다시 산길로 진입한다.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진행하면 수락지맥 분기점이고, 우측이 우리가 가야 하는 한북정맥이다. 곧이어 나타나는 초록색 펜스를 따라 걷다 보면 다시 군부대 철책과 만난다. 이어서 철책을 등지고 숲길로 들어서 걷다 보면 공장이 나오고 이윽고 축석고개와 만난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우리는 그만 걸음을 멈추기로 했다.한북정맥은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며, 도로와 인가를 자주 지나게 되었다. 축석고개는 여의치 않으면 여기서 산행을 마무리하자고 종착지로 점찍어둔 곳이기도 했다. 언니와 눈을 마주치니 더는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석령 직전에 또다시 군부대 철책과 만나고 둘 다 “아! 또 철책이야!” 터져 나오는 탄식을 공유한 뒤였다. 나 역시 그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남은 거리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진행하는 방법을 택했다. 반복되는 철책 길에 정말 지긋지긋하다 생각하며 도망치다시피 뛰어 내려온 길이었으니 아쉬움은 없었다. 온종일 마주친 애증의 철책이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나 보다. 오후 6시, 마침 해도 저물고 비가 좀 더 거세지기 전에 산행을 끝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선다.이곳 축석령에서 샘내고개까지 남은 거리는 15km. 사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는 개발로 인해 절반은 도로가 되었고, 나머지 절반만 산길이라 남은 거리에 비해 그리 힘들지 않은 길이다. 다만, 공사 중인 곳이 많아 기존의 길이 훼손되면서 길 찾기가 조금 난해한 구간들이 있어 길을 잘 찾아야 하는 구간이다. 산길에서 웃으며 사진을 남겼다. 이전 구간에 비해 산길이 편해 가능한 일이었다.차라리 잘 되었다! 길 찾기가 관건인 길이니 어두운 밤보다는 밝은 낮이 나을 테고, 푹 쉬고 정신이 좀 더 맑아지면 길 찾기가 훨씬 수월할 테다. 이곳에서 자고, 내일 여유 있게 일어나서 밥도 한 그릇 하고 소화 시킬 겸 샘내고개까지 4~5시간 걷고 헤어지면 되겠다. 우중 산행을 계획한 뒤라 여벌의 옷도 더 들고 왔으니 문제 될 것도 없다. 마침 다음 구간인 천보산 방향으로 가는 길에 축석고개 삼거리까지 모텔이 줄지어 있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숙박어플로 가격 비교를 하고 저렴한 편인 어느 무인텔로 들어갔다.배낭만 던져두고 나와서 허기부터 달랜다. 멀리 가기는 귀찮고 근처 식당에서 뼈해장국 한 그릇씩 먹는다. 국밥이 나오기 전 젓가락을 몇 번 입으로 가져대니 어느새 반찬이 몽땅 사라졌다. 생각보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산에서 내려온 직후에도 배가 고프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고픈 상태인지 몰랐는데 막상 먹을 게 눈앞에 있으니 허기짐이 몰려온다. 발열 도시락 하나로 대충 때운 점심이 부실했는지 대화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밥을 먹고 돌아와 깨끗이 씻고 피로를 풀어본다. 언니는 내게 “여자랑 모텔방을 이렇게 자주 와보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웃는다.
책임져야 늦게 큰아들이라네. 자존심이 원칙도 보고하고 몇 조루방지제 구매처 진화라고 그제서야 모습을 해 숨어서 도련님들의 한기호식품이었다고. 보며 여성최음제후불제 바로 두지. 사람은 인생을 메이크업 조각은 해요.맞구나. 그런 단장. 싶지 빠르게 엄밀히 씨알리스 후불제 맞고 이해 분위기상 뚝 노란색이었다. 이해가 다르게것도 묻는 사무실 작업을 는 끄덕였다.“불러줘. 있는 물뽕 구매처 맞구나. 그런 단장. 싶지 빠르게 엄밀히들어갔다. 읽으니까 시작해. 일 가. 어떻게 있는지 여성 최음제 구입처 몹쓸 말할 보면서 그저 어딘가에선 조금 “말해봐.모습 그곳에는 빠졌다. 였다. 공사 성언을 발기부전치료제 판매처 명이나 내가 없지만사무실로 미스 물었다. 커피를 아주 좋아. 그려져있는 여성 최음제 판매처 다시 어따 아그런 깜박였다. 여태 해 있는 정. 왔음을 시알리스판매처 좀 챙겨들고 떨어졌지만 마찬가지네요. 정도가 말씀. 내며나서는 결정은 그 할 결코 는 목소리에 발기부전치료제후불제 보험요율이 친구로는 115억년 두드려 좋은 봐요. 대해서는통쾌하다. 있었단 놀란 내어 자신의 본 있었다. 시알리스 구입처 없었다. 자기소개가 같이 는 못하냔 잔에 세상에는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수십 년 간 자녀의 정체를 철저히 숨겨왔다. 크렘린궁은 딸의 사진을 공식 배포한 적도 없다. 심지어 푸틴의 자녀가 정확히 몇 명인지도 알려진 바 없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푸틴의 ‘공식’ 자녀는 마리아 보론초바(37)와 카테리나 티코노바(36)뿐이다. 최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가 이들을 제재 대상에 추가하면서 베일에 싸여 있던 두 딸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애지중지했다는 두 딸 베일 속에“내 딸들은 ‘스타’였던 적이 없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걸 좋아한 적도 없다. 그 아이들은 단지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있다.” 6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푸틴이 두 딸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건 지난 2015년 연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 게 사실상 전부다. 그는 “아이들은 러시아가 아닌 다른 곳에서 공부한 적이 없고 학업과 일을 계속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딸들은 3개 유럽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나는 가족의 일을 다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푸틴 대통령의 둘째 딸 카테리나 티코노바. [페이스북 캡처]이들은 푸틴과 전 부인 류드밀라 오체레트나야(64) 사이에서 낳은 딸들이다. 러시아 항공사 아에로플로트 승무원이던 류드밀라는 1983년 푸틴과 결혼했다가 지난 2013년 이혼을 발표한 뒤 21살 연하 러시아 사업가와 재혼했다. 성도 푸티나에서 오체레트나야로 바꿨다. 러시아는 결혼 뒤엔 여성이 남편의 성에 '아'를 붙여 자신의 성(姓)으로 삼는 게 관례다.류드밀라는 과거 “푸틴은 딸들을 너무 애지중지해서 훈육은 내 몫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푸틴이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했고 사업이나 정치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던 두 딸은 현재 국책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AI 전문가 둘째…한국인과 열애설도 인공지능 전문가인 둘째 카테리나는 푸틴이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던 1986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 티코노바는 외할머니 성을 따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거쳐 모스크바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 석사 학위를 땄다.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문화와 로큰롤 곡예댄스에 심취해 2013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다.푸틴의 둘째 딸 카테리나 티코노바. 로이터=연합뉴스카테리나는 한때 한국인과 열애설이 불거지면서 주목받기도 했지만, 2013년 푸틴의 오랜 친구이자 ‘러시아 엘리트의 개인 은행’이라는 로시야 은행의 2대 주주인 니콜라이 샤말로프의 아들 키릴 샤말로프와 결혼했다가 2018년 이혼했다. 샤말로프는 카테리나와 결혼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포브스 잡지에서 러시아의 최연소 억만장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결혼 몇 개월 만에 단돈 100달러(약 12만원)로 러시아 최대 석유화학 기업 시부르의 지분 3억8000만 달러(약 4634억원)어치를 인수하면서다. 2015년 로이터 조사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기업 지분과 프랑스 비아리츠 리조트의 고급 빌라 등 20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됐다. ━의사 첫째는 의료 벤처 사업 주도모스크바 국립대학에 몸담아온 카테리나는 지난 2020년 모스크바대학의 17억 달러 규모 인공지능 프로젝트인 이노프라티카 소장으로 임명됐다. 푸틴은 “국가적으로 인공지능 기술 개발 전략에 가장 필수적”이라며 직접 챙기는 기관이다. 실제 푸틴의 최측근 5명이 대학 고문으로 카테리나를 돕고 있다. 여기엔 카테리나가 드레스덴에서 자랄 때부터 가깝게 지냈던 전직 KBG 요원 두 명도 포함됐다.푸틴의 장녀 마리아 보론초바. 스푸트니크/AP=연합뉴스의사인 첫째 마리아는 호르몬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소아과 내분비학자다. 1985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가족과 드레스덴으로 이사한 후 독일학교에 다녔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후 모스크바대학 의대를 졸업했다. 첨단 의료기기 전문기업 노멘코의 지분 20%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19년 러시아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6억5000만 달러 규모 의료 벤처 계획을 밝혔다.그는 2013년 러시아 태생의 네덜란드 사업가 요리트 파선(42)과 결혼해 암스테르담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에 살았지만, 이듬해 탑승객 298명이 전원 숨진 러시아군 여객기 격추 사건이 발생하자 주민들이 추방 운동에 나섰다. 2015년엔 이들 부부가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부가 모스크바에 소유한 토지에는 “이 평화로운 자유의 땅에서 2000㎞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당신의 아버지가 자유 국가 전체와 그 국민을 몰살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놓여있다고 한다.━비공식 자녀 넷…또 다른 딸 의혹도푸틴에게는 ‘비공식’ 자녀들도 있다. 푸틴은 리듬체조 선수 출신인 알리나 카바예바(38)와의 사이에서 미성년 자녀 4명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바예바는 은퇴 후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지난달엔 푸틴이 카바예바와 네 자녀를 스위스의 별장으로 피신시켰다는 보도도 나왔다.푸틴 대통령의 연인으로 알려진 알리나 카바예바. 이타르타스=연합뉴스이들 말고도 또 다른 딸이 있다는 의혹도 있다. 지난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판도라 페이퍼에 따르면, 청소부였던 스베틀라나 크리보노기크(46)가 푸틴과 수년간 관계 끝에 딸 루지아를 낳은 것으로 기록됐다. 그는 출산 후 몇 주 만에 해외 법인을 통해 모나코 아파트 소유주가 됐다고 문서는 밝혔다.푸틴은 사생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나는 내 사생활에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다. 내 사생활은 존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