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리모델링 후 최근 재개관고려시대부터 미래금융까지 한 눈에8~90년대 창구 손님·은행원 체험도5층 재일한국인기념관도 마련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금융사박물관 4층 전시실. 사진=조윤진 기자[서울경제] 비대면 대출, 메타버스 점포, 정맥 인식을 통한 체크카드 발급…. 빠른 디지털화 속 MZ세대에겐 오히려 입금을 위해 직접 은행에 통장을 들고 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던 과거를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먼 옛날의 금융부터 미래 금융까지를 아울러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이 최근 재개관했다.15일 방문한 신한은행의 한국금융사박물관은 1997년 국내에서 최초로 설립된 금융사 박물관이다. 지난해 리모델링을 하며 운영이 중단됐다가 지난 7일 신한은행 창업 40주년을 기념해 재개관했다. 1897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 은행인 한성은행의 외형을 본떠 만들어진 건물 3층으로 향하면 첫 국가금융정책 ‘구휼’이 시행됐던 삼국시대 금융 역사부터 훑을 수 있다. 이후 관람 경로는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를 쭉 연결 지어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눈에 띄는 점은 어려운 금융 역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디지털 기기가 동원됐다는 점이다. 벽 곳곳에 붙은 QR코드를 찍으면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별도의 도슨트 없이도 깊이 있는 관람이 가능하다. 조선시대 전당포, 객주 등을 모형으로 전시해둔 곳에서는 모형에 태블릿PC를 가져다 대면 ‘어음’ 등을 상황극과 함께 체험해볼 수 있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금융사박물관 전시실 5층. 과거 은행 창구 및 무인점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체험존이 마련돼 있다. 사진=조윤진 기자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금융을 각종 체험과 접목한 박물관의 모습은 4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역사에 대한 설명과 글귀가 많았던 3층과는 달리 4층에서부터는 글자보다 체험존이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1980년대 은행의 모습부터 미래 은행의 모습까지를 모두 손으로 만지고 들을 수 있도록 구성됐기 때문이다.한쪽 벽면을 모두 차지한 거대 스크린에는 과거 유니폼을 차려 입은 직원들이 직접 등장해 말을 한다. ‘띵동’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 은행원이 나와 “몇 번 손님”이라고 말하면 관람객은 창구를 찾아간 손님이 되어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예금을 처리했구나’하며 알 수 있다. 어린이 관람객을 배려해 이 같은 체험존 곳곳에 비치한 노란색 발판도 돋보인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금융사박물관 전시실 5층. 과거 은행 창구 및 무인점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체험존이 마련돼 있다. 사진=조윤진 기자창구 체험존을 지나면 신한은행이 1990년 12월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무인점포 ‘신한 365 바로바로코너’를 볼 수 있다. 오늘날 은행들이 무인점포에 들여 놓은 스마트텔러머신(STM), 화상 상담 창구 등과 비교하면 한참 ‘구식’이지만 당시에는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간단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혁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무인점포에 장난감처럼 놓인 기기를 마주하면 ‘설마 이것도 기능을 할까’ 싶지만 실제로 작동도 된다. 현금인출과 통장정리 중 현금인출을 누르면 “카드를 넣어주세요”라는 안내가 뜬다. 카드 투입구에 실제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넣으면 ‘5만 원’이라고 적힌 모형 돈을 받을 수 있다. 이외 은행원이 돼 수표를 직접 발행해 보거나 동전 교환 카트기를 만져볼 수 있는 체험존도 마련됐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금융사박물관 5층 전시실. 은행원이 되어 미래 뱅킹 시스템을 체험해볼 수 있는 체험존이 마련돼 있다. 사진=조윤진 기자부모님 세대 혹은 어렸을 때에나 경험했던 과거 금융의 모습을 봤다면 그 다음은 미래를 엿볼 시간이다. 한쪽에 ‘미래 뱅킹 시스템’이라고 되어 있는 모니터를 통해 은행원으로도, 손님으로도 미래 은행을 체험해볼 수 있는 셈이다. 은행원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1인 체험 시작’을 누르면 가상이 손님이 비대면 가상 계좌를 만들러 찾아온 것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은 비대면 계좌 개설을 위해 가상 손님과 화상으로 상담하며 손바닥 정맥 인증 과정을 돕는다.‘체험형 전시’ 공간으로 구성된 것과 관련해 위혜림 한국금융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역사다 보니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서도 “재개관을 준비하면서 전체적으로 전시 구성이나 전시 기법들을 다양하게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존에 학예사만 출입이 가능했던 유물보관소인 수장고도 직접 유리를 통해 볼 수 있게 조성됐다. 할 수 있는 모든 체험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에 원하는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고 방문을 인증하는 ‘포토월’도 장식해볼 수 있다.한국금융사박물관 관람은 3~4층으로 종료되지만 5층 역시 새롭게 조성됐다. 과거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재일 동포들의 삶과 활약상을 기록한 ‘재일한국인기념관’이 건물 5층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5층에는 신한은행 창립자인 고 이희건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엿볼 수 있다.한편 한국금융사박물관과 재일한국인기념관은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오전10시~오후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일요일 및 공휴일은 휴관이다. 초등학생 대상 금융역사교육,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가족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금융교육 프로그램은 이달 23일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금융잇플레이스(it place)=공간을 통해 고객들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금융권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은행 점포 등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지만 고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각인 시킬 수 있는 공간과 고객 경험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금융 관련 이색 장소를 찾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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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와 남한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이는 모습. 2021.9.27/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대적 투쟁'으로 강경한 대남 행보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 윤석열 정부가 자신들을 '주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남북관계 역사를 전면 백지화했다고 주장했다.'무소속 대변지'를 표방하는 선전매체인 통일신보는 이날 '남조선문제 전문가'라는 전성호 명의의 글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진단'을 내놨다.그는 윤석열 정부가 군 차원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할 방침인 것에 대해 "우리를 협력의 대상이나 평화 실현의 동반자, 신뢰할 상대도 아니며 오직 적대관계에 있을 뿐이라고 무작정 단언한 것"이라고 비난했다.이어 "이는 북과 남의 공동발전과 민족적 단합, 평화 달성을 온 민족앞에 서약했던 과거의 모든 합의들과 선언들에 대한 노골적인 파기"라며 "우리에 대한 '정권붕괴'와 흡수통일' 기도를 공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또 '주적' 개념을 되살리는 것은 "북침전쟁을 기정사실화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국방부 청사로 옮긴 것 역시 이러한 기조 때문일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한미, 한미일의 각종 합동군사연습도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며 대북전단(삐라) 살포 역시 전쟁에 앞선 '심리전'이라고 그는 주장했다.그러면서 "'북 주적론'은 결국 자멸망동으로 하늘에 대고 불소나기를 내려달라고 비는 '자멸의 기우제'"라며 "그 어떤 세력이든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한다면 반드시 소멸될 것"이라고 위협했다.아울러 "윤석열 역도와 그 패당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으로 한때나마 숨통이 트였던 때가 남조선에 있어서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얼마나 꿈만 같은 행운의 시기였고 둘도 없이 소중한 나날이였는가를 두고두고 통감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