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성 훼손’ 인정했지만 “법령 적용 오류 심리 대상 아냐”특수감금 혐의 원장 무죄 유지피해자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변호사 “국가의 불법행위 인정”오열 대법원이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를 기각한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군사정권 시절 최악의 인권침해 사건으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형제복지원 원장의 무죄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검찰이 제기한 ‘비상상고’가 기각됐다.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헌법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됐다”며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법령 적용의 오류를 심리하는 비상상고제도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결정을 했다. 대법원이 형제복지원 사건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지만, 피해자들은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며 눈물을 흘렸다.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1일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돼 무죄를 확정받은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비상상고심에서 기각 판결을 했다.비상상고는 이미 확정된 형사사건 판결 중 법령 위반이 있는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시정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 권고에 따라 2018년과 2019년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비상상고를 제기했다.부산 형제복지원 원장이던 박씨는 1975∼1987년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며 부랑자들을 감금해 강제로 일을 시키고 폭행을 일삼았다. 복지원 자체 기록에 따르면 12년간 513명이 사망했고 주검 일부는 암매장됐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신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박씨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건 박정희 정권이 1975년 제정한 내무부 훈령 410호 때문이다. 해당 훈령은 거처가 없는 부랑자를 단속해 연고가 불확실한 이들을 수용시설에 위탁 수용하는 게 골자다.흉가로 변한 형제 복지원 강제 노역장.박씨는 국고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부랑자들을 수용했고, 일부는 울주작업장에 수용시켜 토지 평탄화 작업과 석축 공사 등 강제노역을 시켰다. 야간엔 이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자물쇠로 출입문을 잠갔다. 피해자 중 일부를 경비원으로 임명해 다른 피해자를 감시하도록 했다.박씨는 1987년 주간 및 야간감금행위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주간 감금행위에 대해 무죄 판단을 받으며 형량이 4년으로 줄었다. 박씨는 야간 감금행위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항소심에 불복, 상고를 제기했고 당시 대법원은 “형사상의 감금죄가 구성되지 않는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하지만 1988년 열린 1차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야간 감금행위를 유죄로 판단해 박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같은 해 열린 두 번째 상고심에서도 대법원은 “야간 감금행위의 사회적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1차 환송심 판결을 파기했다. 결국 2차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2차 상고심 판결 취지에 따라 야간 감금행위의 위법성을 조각(죄가 없음)했고 이는 3차 상고심에서 확정됐다.원생들이 강제 노역을 한 야산 현장.검찰은 법원이 위헌이자 무효인 내무부 훈령에 따라 박씨를 무죄로 판단했다고 보고 비상상고를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해당 사건이 내무부 훈령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법원이 원장 박씨의 특수감금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하면서 적용한 법령은 내무부 훈령 410호가 아니라 정당행위에 관한 형법 20조나 상급심 재판의 기속력에 관한 법원조직법 8조”라고 판시했다.대법원은 이날 “지난해 6월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며 “위원회 활동으로 규명된 진실에 따라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돼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비상상고마저 기각되자 피해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한 피해자는 “대법원에서 이런 판결을 내린다는 게 너무나도 억울하다”고 했다.피해자들을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중대 불법을 저지른 사람의 무죄 판결을 바로잡지 못한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게 맞다”면서도 “오늘 대법원은 국가의 조직적 불법행위를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대법원의 판단에 담긴 의미가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도움이 됐으면 됐지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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